지난 주말 도쿄 현지에 부임한 유흥수(76) 신임 주일대사는 자신이 ‘올드보이’임을 부정하지 않는다. 역대 최고령 주일대사인 건 물론이고, 역대 최고령 현직 대사다. 박근혜 정부의 최고령 공직자이기도 하다. 경찰 공무원에서 국회의원을 거쳐 외교관으로 변신한 그는 ‘호모 헌드레드(homo hundred)’ 시대의 인생 3모작을 남보다 앞서 실천하고 있는지 모른다. 청와대에서 주일대사 신임장 수여식이 있었던 지난 21일, 그를 중앙일보 유민라운지에서 만났다.

▲ 박근혜 정부 최고령 공직자가 된 유흥수 신임 주일대사는 “내 나이에 구애 받을 게 뭐 있겠냐”며 “오로지 나라를 위해 소신껏 당당하게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 대사 내정 통보를 받고 고민하진 않았나.

 “뜻밖의 제의라 놀라기도 하고, 머뭇거리기도 했다. 어린 시절 일본에서 자라고, 국회에서 일본 관계 일을 쭉 하기도 했지만 내 나이를 생각하면 공연히 이 정부에 부담만 주는 결과가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그러나 이 나이에도 할 역할이 있다고 생각해 나라가 나를 불러준다는 건 고맙고 영광스러운 일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다행히 아직 건강에 문제는 없으니 나라를 위해 사심 없이 마지막 봉사 한번 해보자는 쪽으로 마음을 굳혔다.”

 - 언론을 통해 알려지고 난 뒤 일본 쪽에서 연락이 많이 왔나.

 “아그레망이 도착하고 나서 일본에서 더러 전화 도 오고, 내가 연락을 하기도 했다.”

- 구체적으로 어떤 사람들인가.

 “한·일의원연맹 일본 측 회장인 누카가 후쿠시로(額賀福志郞)한테는 내가 먼저 연락했다. 내가 의원연맹 한국 측 간사장일 때 일본 측 파트너였다. 의원연맹의 일본 측 간사장인 가와무라 다케오(河村建夫)한테도 연락했다. 관방장관과 문부대신을 지낸 중진 의원으로 한·일친선협회 일본 측 이사장도 겸하고 있다. 법무대신과 공안위원장을 지낸 민주당의 나카이 히로시(中井洽)한테서는 전화가 왔다.”

 - 2004년 17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고 정계에서 은퇴했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나.

 “‘가슴이 따듯한 자유인’으로 사는 게 은퇴 후 내 목표였다. 글 쓰고, 여행하고, 운동하고, 좋아하는 친구 만나며 자유롭게 지냈다. 한·일친선협회 이사장직을 맡아 일본에도 왔다 갔다 했다.”

 - 박근혜 대통령과의 개인적 인연은.

 “특별한 인연은 없다, 내가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 위원장일 때 박 대통령도 같은 위원회 위원이었다. 국회 본회의장에서는 바로 내 뒷자리에 앉았었다. 박 대통령이 날 어떻게 생각하는지 잘 몰랐는데 이번 인사를 보니 나쁜 인상은 안 가졌던 모양이다.”

 - 당선 또는 취임 후 박 대통령을 만났나.

 “새누리당 상임고문단을 청와대로 초청해 만찬을 하는 자리에서 딱 한 번 봤다.”

 -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과는 경남중·고 동창 아닌가.

 “나는 경남중에 경기고, 그분은 마산중에 경남고 출신이다.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서로 전혀 몰랐다. 나는 부산이 선거구여서 경남중·고 동창회에 자주 나갔지만 김 실장은 한 번도 나온 적이 없다. 동창이라는 유대감은 그분도 없고, 나도 없다. 언론이 김 실장과 나를 중·고등학교 동창으로 엮는 것은 완전한 억지다.”

 - 서울대 법대 58학번 동기동창 아닌가.

 “대학 생활 잘 알지 않나. 동기라고 다 친한 것은 아니지 않나.”

 - 그래도 유 대사 인사는 김 실장 인사라는 소문이 파다하다.

 “김 실장은 아주 합리적이고 정확한 사람이다. 개인적 인연이 있다고 해서 대통령에게 ‘유흥수 대사 시킵시다’라고 말할 사람이 아니다. 물론 일본 문제가 잘 안 풀리는 상황이다 보니 누굴 대사로 보내야 하는가에 대한 의논이 두 분 사이에 있었을 수 있다. 일본을 알고, 일본어도 잘한다는 이유로 내 얘기까지 나왔을 수 있지만 당연히 나이가 문제가 됐을 것이다. 그래도 건강만 좋으면 괜찮은 것 아니냐…. 짐작컨대 이런 식으로 얘기가 진행되지 않았나 싶다.”

 - 일본어 실력은 어느 정도 수준인가.

 “며칠 전 벳쇼 고로(別所浩郞) 주한일본대사와 통역 없이 단둘이서 점심을 했다. 벳쇼 대사는 한국어를 전혀 못 한다.”

 - 일본 내 인맥이 상당한 걸로 알려져 있다.

 “앞서 언급했던 사람들 말고, 은퇴한 사람들 중에서는 모리 요시로(森喜朗) 전 총리도 알고,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전 총리와도 잘 안다. 나카소네와는 서울에서 골프를 같이 친 적도 있다. 그의 장남으로 현재 참의원으로 있는 나카소네 히로후미(中曾根弘文)도 잘 안다.”

 -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부친인 아베 신타로(安倍晋太郞)와 각별한 사이였다고 하던데.

 “그가 외상일 때 JC(청년회의소) 초청으로 부산을 비공식 방문한 일이 있다. 각별히 친했다기보다 그때 몇몇이 어울려 그를 부산의 유명한 요릿집인 동래별장에 초대해 폭탄주 마시고 러브샷까지 한 적이 있다. 그때 비서관 자격으로 따라왔던 아베 총리는 옆방에서 내 비서와 같이 저녁을 먹었다.”

 - 1991년 아베 신타로의 장례식에도 갔었다고 하던데.

 “그건 사실이 아니다. 나중에 허주(김윤환)하고 둘이 묘소를 참배한 적은 있다.”

 - 2011년 ‘욱일중수장’이라는 일본국 훈장을 받았다. 일본 정부가 인정한 친일파란 뜻인가.

 “일본이 인정한 지일파란 뜻 아닐까(웃음). 한·일의원연맹 간사장을 하고 나면 대개 받는 훈장이다.”

 - 30년대에 태어나 80을 바라보는 나이에 60년대에 공직을 시작한 분들을 가리키는 신조어로 ‘신(新)386’이란 말이 등장했는데 ….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지어낸 말이겠지만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않는다. 구(舊)386이든 신386이든 일만 잘하면 되는 것 아닌가(웃음). 내 인사에 대해 야당도 처음엔 ‘5공(共) 올드보이의 귀환’이니 ‘김기춘의 오기인사’니 하더니 요즘엔 그런 소리가 쑥 들어간 것 같더라.”

 -‘올드보이의 귀환’은 사실 아닌가.

 “내가 올드보이란 건 부인하지 않는다. 나이 많은 사람들 중에는 내 인사를 반기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나이 많은 사람을 시켜놨더니 지혜는 있을지 몰라도 건강과 체력, 판단력과 기억력 등 여러 가지 문제가 많더라는 소리가 나올까 걱정하는 사람들도 있다. 적어도 그런 소리는 안 들어야 하지 않겠나. 그래서 ‘걱정 마, 내가 잘할게’라고 스스로 다짐하고 있는 중이다.”

 - 나이를 떠나 박정희·전두환 시대의 인물이란 이미지가 있다.

 “어린 나이에 고시에 합격해 박정희·전두환 시대에 공직 생활을 한 건 맞지만 김대중·노무현 시대 때도 국회의원으로 활동했다. 박정희·전두환 때 얘기만 하고 김대중·노무현 때 얘기를 안 하는 것은 공평하지 않다.”

 - 전두환 정권 출범 초기에 치안총수를 했다는 사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 내가 치안본부장을 할 때는 박종철 고문 치사사건 같은 불미스러운 사건이 없었다.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 역대 주일대사는 물론이고 역대 현직 대사 중에서도 최고령이다.

 “현 정부 공직자 중에서도 최고령일 거다.”

 - 대한민국 최고령 공직자로서 어깨가 무거울 것 같다.

 “그렇다. 이중으로 무겁다. 한·일관계가 어려울 때 주일대사를 맡았으니 어깨가 무겁고, 나이 많은 사람들의 대표로 나라의 중책을 맡았으니 어깨가 무겁다. 하지만 이 나이에 구애될 게 뭐 있겠나. 그러니 정말 사심 없이 과거 공직 생활을 했던 때와는 딴판으로 한 번 해보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 무슨 뜻인가.

 “솔직히 옛날에는 승진과 영전도 신경 쓰고, 가족 걱정도 했을 것 아니냐. 지금은 그런 게 전혀 없다. 오로지 나라를 위해 남의 눈치 안 보고, 소신껏 정말 당당하게 나라만 생각하고 일을 하겠다는 뜻이다.”

 - 필요하면 대통령에게도 소신을 피력하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여도 되나.

 “대통령의 국정 철학을 벗어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건의할 건 해야 하는 것 아니겠나.”

 - 대사 제의를 처음 받았을 때 사양하지 않고 덥석 받으면 노욕(老慾)으로 비칠 수 있다는 생각은 안 해 봤나.

 “내가 먼저 자청한 건 아니니까 노욕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다만 외교부 사람들 앞길을 막는 꼴일 수 있겠다는 생각은 했다. ”

 - 박 대통령 주변에는 왜 나이 든 분들뿐이냐는 얘기가 많다.

 “김기춘 실장 한 명 아닌가. 나야 일본으로 가니 주변도 아니고, 또 누가 있나.”

 - 정홍원 총리도 우리 나이로 71세다.

 “그 정도는 이제 나이 많은 것도 아니다. 고령화 시대에 맞게 사람들 인식도 바뀌어야 한다. 70대 초반 정도는 나이 많다고 배척할 게 아니라 일을 시켜야 한다. 그래야 우리 사회가 균형 있게 발전할 수 있다. 그 사람들 부양하려면 젊은 사람들도 힘들지 않나. 나는 분명히 나이가 많은 사람이지만 70대 초반 정도는 나이 많은 사람 취급하면 안 된다.”

 - 그럼 몇 살부터가 나이가 많다고 봐야 하나.

 “75세 정도 아닐까.”

 - 성공한 인생이란 뭘까.

 “행복한 인생 아닐까. 옛날에는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 성공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내가 행복하면 성공이라고 생각한다. 뭘 하든 현재 만족하면 그걸로 성공이다. ”

 - 신임 주일대사로서 각오를 밝혀 달라.

 “한·일관계가 어려운 때 주일대사라는 중책을 맡게 돼 책임감이 매우 무겁다. 국가 간 관계도 개인 간 관계와 같다고 생각한다. 좋을 때도 있고 나쁠 때도 있다. 지금은 최악이라면 최악인 상황이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이런 비정상적인 관계가 지속돼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더구나 내년은 한·일 국교 정상화 50주년이 되는 해다. 대통령도 8·15 경축사에서 내년이 양국 관계가 새 출발하는 원년이 되도록 하자고 했다. 그렇게 될 수 있도록 미력이나마 최선을 다할 생각이다.”

글=배명복 논설위원·순회특파원

사진=김성룡 기자

유흥수 대사는 …?

1937년 12월 경남 합천 출생. 58년 경기고 졸업. 62년 서울대 법대 졸업, 14회 고등고시 행정과 합격. 80년 서울시경국장, 치안본부장. 82년 충남도지사. 84년 청와대 정무2수석. 85년 12대 국회의원(민정·부산 남-해운대구). 92년 14대 국회의원(민자·부산 남구을), 한·일의원연맹 상임간사. 96년 15대 국회의원(신한국·부산 수영), 한?일의원연맹 부회장. 98년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 위원장. 2000년 16대 국회의원(한나라·부산 수영), 한·일의원연맹 간사장. 2004년 정계 은퇴 선언. 2008~2014년 한·일친선협회 이사장

인터뷰 후기

자신을 내려놓는 솔직함에 빨려 들어갔다

부임 준비로 바쁜 사람을 오래 붙잡아둘 순없었다. 해서 딱 한 시간만 하기로 한 인터뷰였다. 웬걸, 하다 보니 두 시간이 훌쩍 넘었다. 자기를 내려놓는 솔직 담백함에 나도 모르게빨려 들어갔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얘기해도 괜찮을지 모르겠지만 알아서 잘 써줄 걸로 믿고….” 그는 이렇게 운을 떼고는 일본과 얽힌 가족사, 고시 합격후 경찰을 택한 이유, 고향 선배인 전두환 전대통령과의 관계 등에 대해 솔직한 얘기를털어놓았다. 그는 출세가 빠를 것 같아 경찰을 택했고, 그걸 기반으로 정계의 문을 두드렸다고 했다. 4선 의원까지 했지만 ‘정치인 유흥수’는 낙제생이라는 말도 했다. 전두환대통령 덕을 본 건 없지만 지금도 친분을 유지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연희동으로 부임인사도 갔다.

 그는 경남 합천에서 태어났지만 일본 교토에서 자랐다. 소학교(초등학교) 5학년 때 부모를 따라 귀국해 8개월 만에 6·25를 맞았다. 경남중학교를 나와 1년 재수 끝에 경기고에 입학했다.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던 해 고시에 합격해 경찰 관료로 승승장구했다. 일본어만큼 사고도 자유로운 그에게서 희수(喜壽)의 나이를 체감하긴 어려웠다. 꽉 막힌 한·일관계를 풀기 위해서는 외교적 관료 주의의 틀에서 그를 자유롭게 풀어주는 것

이 낫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출처=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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