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충식 방송통신위원회 부위원장(왼쪽)과 양문석 상임위원. 양 위원이 2011년 진주ㆍ창원 MBC 통폐합에 반대해 삭발을 했을 때 사진이다. 두 사람은 5명의 상임위원 가운데 2명의 야당 추천 위원이다. 김 부위원장과 양 위원이 반대했지만 통폐합을 막지 못했다.

지난 18일, 프레스센터 프레스클럽에서 열린 토론회. 이동통신 주파수 추가 할당 문제를 두고 갑론을박하던 가운데 한 참석자가 물었다. “그런데 정부조직 개편안이 통과되면 주파수 정책은 미래창조과학부로 가는 것 아닌가요. 지금 이런 토론회를 왜 합니까.” 갑자기 분위기가 썰렁해졌다. 사회를 맡은 김남 충남대 정보통신공학부 교수의 답변에 실소가 터져 나왔다. “시점이 좀 애매하긴 하네요. 그래도 논의는 해야 되니까.”

이틀 뒤인 20일, 방송통신위원회 회의실. 이날 주파수 경매 방안이 상정될 거라는 관측이 있었지만 일부 상임위원들이 “어차피 미창과부로 이관될 가능성이 크니까 차기 정부로 넘기자”고 제안해 안건 상정 자체가 무산됐다. 위원장을 비롯해 방통위 상임위원들은 새 정부 출범과 무관하게 내년 3월까지 임기가 보장돼 있다. 그러나 이계철 위원장이 이미 사의를 밝힌 상태고 다른 상임위원들도 중심을 잡지 못하고 흔들리는 모습이다.

이 위원장은 13일 방통위 출입기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청와대에 사의를 표명한 상태”라며 “법적으로 임기가 결정돼 있어 사의표명을 해줘야 후임자를 뽑을 수 있다, 그래서 사의를 표명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치권력에서 독립해서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있도록 합의제 위원회로 출범한 방통위의 수장이 남은 임기를 포기하면서 정권의 낙하산이라는 사실을 시인한 셈이다.

업계에서는 애가 탄다. 18일 토론회에서는 방통위가 제안한 세 가지 시나리오를 두고 통신사들이 첨예한 격론을 벌였다. 어떤 시나리오로 가느냐에 따라 업계 판도가 뒤바뀔 정도로 민감한 사안이다. 방통위는 당초 2월 안에 주파수 할당 방안을 결정해서 4월에 주파수 경매를 실시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방통위가 사실상 해체 수순으로 가고 상임위원들까지 손을 놓으면서 4월 경매도 물 건너 가는 거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이런 와중에 민주당 추천의 방통위원인 김충식 부위원장의 해외 출장도 구설수에 오르내린다. 김 부위원장은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리는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에 참석하러 지난 21일 출국했다. 3대 정보통신기술(ICT) 박람회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이 행사는 25일부터 3일 동안 열리는데 김 부위원장은 루마니아와 방송통신 정책 협력을 강화한다는 등의 업무로 일찍 나섰다. 루마니아 정보사회부 차관과 시청자위원회 위원장 등을 만나는 일정이다.

물론 MWC와 세계가전박람회(CES)는 방통위 상임위원들이 번갈아가며 참석해 왔고 ICT 업계 트렌드를 확인하고 조망하는 중요한 행사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이런 엄혹한 시절에 부위원장이 한가하게 해외 박람회나 찾아다니는 모습을 두고 뒷말이 많다. 미창과부 이관을 앞두고 있는 상태에서 이제 방통위 업무 소관도 아니다. 당장 조직이 반 토막 날 상황이고 위원장이 사실상 공석인 상태에서 부위원장이라도 나서서 조직을 추슬러야 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둘러보면 결코 한가한 상황은 아니다. 지난 연말까지 처리하겠다고 했던 지상파 재송신 문제는 결국 해를 넘겨 제대로 논의 한 번 못해 보고 새 정부로 넘어왔다. 법원이 최근 지상파 방송사들 손을 들어주긴 했지만 KBS2와 MBC를 의무 재송신 채널에 넣느냐 마느냐를 두고 여전히 논쟁이 진행 중이다. 지난해 11월 양문석 위원의 사퇴 파동으로 시간을 허비한 탓도 있지만 업계에서는 도대체 방통위가 뭐하고 있느냐는 비판이 터져 나온다.

CJ 특혜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방송법 시행령 개정안도 전혀 손을 못 댔다. IPTV법 개정안 역시 마찬가지다. 이동통신 사업자 추가 선정도 결국 실패했고 성장동력으로 밀어붙였던 와이브로는 LTE 서비스에 밀려 폐기 수순을 밟고 있다. 망중립성 논쟁 역시 아무런 기준을 제시하지 못했다. 미창과부와 업무 분담을 두고 논란을 벌이는 배경에는 방통위 상임위원들의 무능과 업계의 누적된  불만이 있다.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이 뇌물 수수 등의 혐의로 구속 수감된 뒤 후임 이계철 위원장 체제는 사실상 식물 방통위로 전락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박근혜 정부에서 방통위는 그나마 방송통신 정책 기능을 모두 내주고 유명무실한 규제 기관으로 전락할 운명에 놓여있다. 왼쪽이 이계철 위원장, 오른쪽이 김충식 부위원장.

실제로 최근 방통위 내부 설문 조사에서는 대부분 직원들이 미창과부로 옮겨가기를 바라는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미창과부로 옮겨가게 될 통신정책국의 경우 42명 가운데 36명이 미창과부로 옮겨가고 싶다고 답변했고 방통위에 남게 될 방송정책국에서도 42명 가운데 16명만 방통위에 남고 싶다고 답변했다. 정통부 출신 직원들의 상당수가 이미 마음이 뜬 상태라 방통위는 새해 들어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에 들어갔다.

방통위 국·실장은 물론이고 과장들까지 줄 대기에 바쁘다는 이야기도 흘러나온다. 오죽하면 양문석 상임위원이 “난파선에서 혼자 살겠다는 쥐새끼들”이라는 원색적인 표현까지 써가면서 “국회에서 로비하는 과장들 반드시 책임을 묻겠다”고 경고했을 정도다. 그러나 업계 한 관계자는 “단순히 과장들의 문제가 아니라 상임위원들도 중심을 잡고 방통위의 정체성을 지키지 못했있다”면서 “양 위원도 그런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서울 세종로 방송통신위원회 1층 현관

최진봉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합의제 시스템의 문제라기 보다는 애초에 대통령과 정당이 위원들을 추천하는 시스템에서는 정치적 독립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게 진짜 문제”라고 지적했다. 최 교수는 “정권의 눈치를 보는 영혼 없는 관료들과 무기력한 상임위원들이 지금의 식물 방통위를 만들었다”면서 “특히 정보통신부 출신 관료들의 밥그릇 싸움에 방송의 공공성이 내동댕이쳐진 꼴”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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